金在性
在性1862 ~ 1915
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관련 사건
- · 이완용
- · 박영효 암살계획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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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3) 1915년 판결문에 54세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1862년 생으로 추정된다. 출생지와 성장과정, 1907년 의병장으로 활동하기 전까지의 행적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명은 김운로(金雲路·金雲老)이다. 1907년 6월의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광무 황제로 하여금 융희황제에게 양위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이어서 7월 24일 일제와 이완용(李完用) 친일 내각 사이에 군대 해산, 사법권과 경찰권의 위임을 골자로 하는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정미7조약)이 체결되었다. 8월 1일부터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지방의 진위대(鎭衛隊)에 대한 해산 조치가 강제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907년 거의(擧義)하여 무장한 수십여 명의 의병들을 지휘,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지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음)7월 21일 서상현(徐相顯) 의병부대와 이남규(李南圭)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일본인 기타무라 치즈카(北村千束) 부부와 시미즈 타미지(淸水民治) 부부를 충북 보은 군청에서 총살하였다. 1914년 (음)7, 8월경 충북 괴산군(槐山郡) 청천면(靑川面) 지촌리(芝村里)에서 측량사(測量師) 정운기(鄭雲淇) 등에게 다음과 같은 계획을 밝혔다. 광무 황제의 밀명을 받고 전라도의 홍재식(洪在植), 서간도(西間島)의 이래춘(李來春)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계획 중인데, 서울에서는 각 지역에서 모인 학자들이 병사를 비밀리에 모집 중이고, 민병승(閔丙昇)이 군자금으로 20만 냥을 제공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병력 조직에 성공하면 서울에서 일본인을 격퇴하고 이완용(李完用)과 박영효(朴泳孝)를 처단할 예정이었다. 총기는 중국에서 구입하고, 중국 병력의 원조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5년 7월 2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사형을 받았다.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9일 기각되었으며,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11월 5일 기각되었다. 1915년 말 또는 1916년 초에 형이 집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날짜는 알려져 있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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