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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선

金應先

1874. 1. 28 ~ 1949.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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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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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淳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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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4년 1월 28일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福興面) 외양리(外羊里)에서 태어났다. 1909년 의병에 참여하기까지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6월 광무황제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자 일제는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순종 즉위 후 불과 며칠 후인 1907년 7월 24일 이완용(李完用)을 내세워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과 경찰권을 통감부에 위임하게 하였다.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에 해산 명령이 내려지자 대대장(大隊長)인 박승환(朴昇煥)이 자결하였고, 이에 일본군과 해산 군인들 간에 시가전이 벌어졌다. 8월 2일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의병이 분연히 일어났다. 이러한 시기에 순창 출신 김선여(金先汝)가 조직한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09년 4월 21일부터 5월 9일까지 12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총기 5정으로 무장하고 복흥면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09년 9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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