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義洪
義洪1886 ~ 1908. 4.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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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0) 경상남도 하동(河東) 출신이다. 이명은 김병원(金炳源)을 사용하였다. 일제 측의 기록에 따르면 188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 거의하여 의병장으로 활동하기까지의 성장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광무 황제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압력을 받아 7월 20일 순종에게 양위하였다. 이어서 7월 24일 이완용(李完用)의 친일 내각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과 경찰권을 통감부에 위임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을 일제와 체결하였다. 8월 1일부터 대한제국 군대인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지방의 진위대(鎭衛隊)에 대한 해산 조치가 강행되자, 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의 자결에 이은 시위대 2개 대대의 저항,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였다. 1908년 초 봉기하여 같은 하동 지역에서 이미 활동 중이던 임봉구(任鳳九) 의병부대와 연합하였다. 3월 30일 의병 14명을 인솔하고 하동군 횡포면(橫浦面)과 마전면(馬田面) 일대에서 일진회원 1명을 체포, 총살하였다. 다음 날 진주경찰서에 파견한 순사대와 수비대의 공격을 받고 심곡촌(深谷村) 일대에서 교전하였으나 이 전투에서 의병 6명이 전사하였다. 화개하면(花開下面) 입석촌(立石村) 자택으로 도피하였다가 4월 1일 오전 3시에 자택에서 붙잡혔다. 도중에 탈주를 시도하다가 총을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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