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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삼

金益三

1879. 12. 28 ~ 1936.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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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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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靈光)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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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9년 12월 28일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 남면(南面) 대덕리(大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봉섭(金鳳燮)이다. 1907년 의병에 참여하기까지의 성장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07년 6월의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광무 황제로 하여금 순종에게 황위를 선위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이어서 7월 24일 일제와 이완용(李完用) 친일 내각 사이에 군대 해산, 사법권 및 경찰권의 위임을 골자로 하는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이 체결되었다. 8월 1일부터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지방의 진위대(鎭衛隊)에 대한 해산 조치가 강제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봉기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 때도 거의(擧義)를 도모한 바 있는 기삼연(奇參衍)은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 1907년 9월 전남 영광의 수록산(隨錄山)에서 의병들의 회맹을 열고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조직하였다. 여기에 참여하여 통령(統領)이었던 김용구(金容九)의 지휘 아래 무기와 군수 물자를 조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12월 10일 흥덕 길마전 전투에서 김용구 의병부대의 선봉장으로 참여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큰 전과를 거두었다. 12월 27일 의병부대가 담양(潭陽)에서 패전하여 기삼연이 붙잡히고 의병부대가 붕괴되자, 독자적으로 의병대를 조직하여 항전을 이어나갔다. 1908년 11월과 12월, 1909년 8월에 전북 고부(古阜) 출신의 박판동(朴判同)·신태경(申泰敬)·전덕진(田德鎭) 등을 포함한 휘하 의병들과 함께 고부와 부안(扶安)에서 군자금 조달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국권을 완전히 상실한 이후에는 봉섭(鳳燮)으로 이름을 바꾸고 은신하였다가 1936년 8월 16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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