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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益洙

益洙

1880. 2. 26 ~ 192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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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益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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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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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중기의병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0년 2월 26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해제면(海除面) 양매리(兩梅里)에서 태어났다. 한자가 다른 김익수(金益秀)라는 이명이 있다. 1905년 일제의 강요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고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 와 「포고팔도사민(布告八道士民)」 을 통해 한인들의 궐기를 촉구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호응하였다. 1907년 7월 고종 황제가 일제의 압력으로 퇴위 당하고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인 시위대(侍衛隊)와 진위대(鎭衛隊)가 강제 해산되자, 전국적인 의병 봉기가 다시 일어났다. 이때 약 5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1909년 중후반까지 전남 지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나 일제가 1909년 9월 1일 2,200여 명의 대병력을 호남에 투입하여 이른바 ‘남한대토벌(南韓大討伐)’ 작전을 벌이면서 호남 의병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9월 19일 전남 무안의 사창에서 서쪽으로 15리 떨어진 대야(大夜)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와 공주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석방 이후 은거하다가 1920년 11월 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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