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중
金翼中1851. 7. 4 ~ 1907. 9.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기우만 의병부대
- · 호남창의회맹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 · 중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51년 7월 4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 맥호리(麥湖里)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봉거(鳳擧)이다. 본관이 울산(蔚山)이고,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후손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여 학문을 익히지 못하였으나 사리를 잘 분변하고 조리 있게 말하였다고 한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1896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매달 향리의 사람들을 모아서 자치적인 규율을 세우고 상벌을 시행하였으며, 집집마다 자체적으로 무장하게 하여서 외부 침입을 막고 앞으로의 기의를 준비하였다. 이때 송사 기우만(奇宇萬)이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는데, 여기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기우만은 의병을 거느리고 나주로 들어가 향교에 진을 치고 활동했으나 관군에 의해 패산하였다. 1907년 7월 광무 황제가 일제의 압력으로 퇴위 당하고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인 시위대(侍衛隊)와 진위대(鎭衛隊)가 강제 해산되자, 전국적으로 의병 봉기가 전개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 때 거의(擧義)했던 기삼연(奇參衍)이 1907년 9월 전남 영광의 수록산(隨錄山)에서 의병들의 회맹을 열고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 대장에 추대될 때 합류하여 참모(參謀)로 임명되었다. 의병의 고창(高敞) 공격에 참여하였다. 총탄이 비오듯 하여도 두려운 빛이 없이 “죽더라도 죽을 일에 죽으면 죽어도 역시 산 것이다”라며 항전하다가 9월 23일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시신은 고을 사람들이 수습하여 가매장하였다가 본가에 알려 그 해 12월 정식으로 매장할 수 있었다. 창의군 대장 기삼연이 관(棺)에 “호남의사녹동김공지구(湖南義士鹿洞金公之柩)”라고 친필로 적었으며,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이 찬(贊)을 저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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