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金在寬1882. 5. 25 ~ 1958. 1.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의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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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2년 5월 25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고수면(古水面) 장두리(長斗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1908년 의병활동을 시작으로 1910년대 중반까지 항일투쟁에 나섰다. 1907년 6월의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광무 황제로 하여금 융희황제에게 제위를 선위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이어서 7월 24일 일제와 이완용(李完用) 친일 내각 사이에 군대 해산, 사법권과 경찰권 위임을 골자로 하는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 인해 8월 1일부터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지방의 진위대(鎭衛隊)에 대한 해산 조치가 강제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최익현(崔益鉉)과 함께 거의했던 최전구(崔銓九)가 다시 봉기하자 정휴직(鄭休直)·권영옥(權寧玉)·봉인학(奉仁學) 등과 함께 종사(從事)로 참여하였다. 1908년에는 호남창의군(湖南倡義軍)의 일원으로 합류하여 고수(古水)·성송(星松)·무장(茂長) 등지에서 일본 군경(軍警)을 상대로 수차례의 유격전을 수행하였다. 1914년 광무 황제에 의해 은밀히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 참모관(參謀官)에 임명되었으나, 이 사실이 일제 당국에 노출되자 은신하였다. 1919년 1월 21일 광무 황제가 사망하자 망곡단(望哭壇)을 쌓고 2년간 복상(服喪)하였다. 이후 행적은 알 수 없고, 1958년 1월 1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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