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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준

金益俊

1899 ~ 19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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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익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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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벽동(碧潼)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벽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벽동청년단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콴뎬현 대청면 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9년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 사망 당시까지 부모는 생존했음이 밝혀져 있으나, 자세한 가족관계와 성장과정은 파악되지 않는다. 1919년 만세운동 후, 벽동군에서 결성된 청년단(靑年團)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일제의 감시망이 좁혀오자, 1920년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西間島)로 갔다. 1920년 초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평안북도독판부(平安北道督辦府)·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 등이 통합하여 서간도 관전현(寬甸縣)에 성립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가입하였다. 광복군총영은 국내 13개 도(道)와 각 군(郡)에 도영(道營)과 군영(郡營)을 설치하였고, 국내 특파단인 별영(別營)도 두었다. 별영은 평북 의주군(義州郡)을 무대로 한 철마(鐵馬, 또는 천마[(天摩)])별영과 벽동군을 담당한 벽파(碧波)별영이 있었다. 고향이 벽동군인데다 청년단 활동 경험이 있어 일제 침략기관의 규모와 내부사정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벽파별영원이 되었다. 별영원이 된 후 벽동군에 설치된 별영의 진지와 총영 본부를 오가며 무장활동을 펼쳤다.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는 밀정을 처단하였으며, 동지들과 전투 조를 편성해 주재소 세 곳을 기습해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하였으나, 어느 정도 치료가 되자 또 다시 총을 들고 나가 항일투쟁을 지속하였다. 1922년 여름에는 콴뎬현 대청면(大淸面) 남대문(南大門)까지 침입한 일제의 경찰대를 추격해 순사 강가(姜哥)를 사살하고, 금화(金貨) 120원을 군자금으로 획득하였다. 1922년 8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개최된 광복군총영 제1회 총회에서 벽파별영 부관에 선임되었다. 부관이 되어서도 여전히 대원들과 전투대를 편성해 무장활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탁월한 용맹성을 보인 까닭에 일제의 군경기관과 밀정들의 검거 대상이 되었다. 1922년 8월 12일 콴뎬현 연자면(碾子面) 립자구(砬子溝)에서 밀정의 밀고에 의해 붙잡혀, 벽동군 주재소로 이송되었다. 혹독한 고문으로 같은 해 9월 3일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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