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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주

金宗柱

187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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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종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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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함흥(咸興)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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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백산무사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1873년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장과정과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자료의 한계 상 알기 어렵다. 1921년 린장현(臨江縣) 모아산(帽兒山)에 본부를 둔 독립군단(獨立軍團)인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의 제3부(部) 이사원(理事員)으로 활동하였다. 백산무사단은 린장현 모아산과 그 주변지역에 형성된 한인사회를 바탕으로 성립된 독립군단이었다. 1921년 4월 본부의 간부진은 단장 이두성(李斗星), 총무 김보환(金寶煥), 서기 김성진(金成晋), 내무 이영빈(李永彬) 등이었다. 본부 이 외 산재한 한인사회를 바탕으로 지방조직인 5개의 부를 설치했는데 이들 중 제3부의 이사원으로 활동하였다. 부에는 조직을 책임질 부장(副長)과 이사원·경호원·서기·통신원·외무원 등이 임명되었다. 이사원의 임무는 정확하지 않으나, 부에서 부장 다음의 권한을 가졌으며 서기와 함께 3명이 행정적 업무를 수행하고, 나머지 경호원·통신원·외무원은 무장활동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제2부 소속의 외무원들이 1921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 하순까지 평양으로 들어 와 군자금모집 활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힌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외무원도 행정직이 아닌 독립군 행동대의 직책이었다. 백산무사단에서의 활동 이후 행적은 알 수 없다. 1920년대 초에 이미 50세를 넘기고 있었으므로 여러 단체를 옮겨가며 활동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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