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洪鎭
洪鎭1890. 12. 23 ~ 1924. 6.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성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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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1890년 12월 23일 경상북도 청하군(淸河郡) 죽남면(竹南面, 현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上玉里)에서 김성규(金成奎)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8년경 온 가족이 서간도(西間島)로 이주하였고, 펑티옌성(奉天省) 카이웨인현(開原縣) 얼따오허즈(二道河子)에 정착하여 살았다. 1923년 9월 편강렬(片康烈)의 주도로 펑티옌성 후이떠현(懷德縣)에서 조직되어 하얼빈(哈爾濱)·지린(吉林)·창춘(長春) 일대의 일제 관서 습격과 친일파 토벌, 한인 부호들로부터 군자금 수취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던 무장항일단체 의성단(義成團)에 가입하여 단원이 되었다. 1924년 5월 하순경 성묘 겸 군자금 모집을 위해 평북 출신 단원 김창진(金昌鎭)을 대동하고 밀입국하였다. 먼저 향리를 찾아본 후 성묘 차 경북 영덕군(盈德郡) 남정면(南亭面) 토암동(土岩洞)의 선묘(先墓)를 향해 가던 중이던 6월 9일 오후 5시경, 남정면 장사동(長沙洞)의 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순사 오기영(吳基永)의 검문을 받고 주재소로 끌려갔다. 오기영과 수석순사 무라세 주이치(村瀨重一)가 합세하여 신체 검색을 하려들자 김창진과 눈짓을 주고받고는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발사하였다. 오기영과 무라세가 총탄을 맞고도 달려들어 일대일로 격투가 벌어진 사이, 그날 비번이던 순사 김익환(金益煥)과 데라카와 아키노리(寺川明德)가 총성을 듣고 집에서 달려 나와 10연발 자동권총을 쏘며 압박하였다. 이 총탄 4발을 맞고 김창진이 사망하자, 격투 상대이던 무라세에게 사격하여 부상을 입히고 주재소를 빠져나갔다. 김익환이 44식 기총(機銃)을 난사하며 추격해오자 가로수와 제방 등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은신하면서 응사하였다. 오른손에 총탄을 맞자 왼손으로 사격하고, 일경 2명이 7·8발씩 쏘는 사이에 세 번을 바꿔 장전하고 40발을 응사하며 맞섰다. 그렇게 일경 4명 전원에게 상·하반신 여러 곳에 관통상을 입히며 항전했으나, 결국은 데라카와가 쏜 총탄을 여러 발 맞아 사망하였다. 일제 당국은 민첩함과 사격술에 "상당한 군대식 훈련을 받은 것 같다"며 경탄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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