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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正練

正練

1882. 9. 17 ~ 1943.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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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羅正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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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寶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보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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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종교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임오교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2년 9월 17일 전라남도(全羅南道) 보성군(寶城郡) 벌교읍(筏橋邑) 칠동리(七洞里) 금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호는 염재(念齋) 대종교 1세 교주 나철(羅喆)의 장남이다. 어려서는 고향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가업에 종사하다가 1905년 전남 보성에서 서울로 이주하여 1909년 단군교 중광 당시 입교하였다. 단군교는 1910년 8월 5일 대종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1914년 만주 옌지(延吉)현 의란구(依蘭溝)로 망명하여 대종교 포교에 힘쓰는 한편 1920년에는 이 지역 구룡학교(九龍學校) 교장으로 민족 교육에 헌신하였다.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고취하는 계몽 사업과 교육 구국 운동에 투신하였다.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 기밀참모로 군자금 조달, 군량미 보급, 독립군 모집 등에 헌신하였다. 1922년 미산(密山)현 당벽진(當壁鎭)으로 이주한 이후에는 대종교 시교원(施敎員)으로 일반 교인들을 인도하는 일에 힘썼다. 1941년 7월 대종교 총본사가 있는 닝안(寧安)현 동경성(東京城)으로 이주하여 경의원 참의(經議院參議) 등 대종교의 중책을 맡아 활약하였다. 이러한 대종교의 활동을 탄압하기 위해서 일제는 1942년 임오교변(壬午敎變)을 일으켰다. 임오교변은 조선어학회의 이극로(李克魯)가 대종교 제3세 교주 윤세복(尹世復)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된 ‘널리 펴는 말’이란 제목의 원고를 일제가 검열 과정에서 조작한 사건이다. 이극로의 원고 중에 ‘널리 펴는 말’이라는 제목을 일제가 「조선독립선언서」로 바꾸고, 내용 마지막 부분의 ‘일어나라 움직이라! 한배검이 도우신다’라는 구절을 ‘봉기하자 폭동하자! 한배검이 도우신다’라고 날조하여 대종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빌미로 삼았다. 그리하여 1942년 11월 19일 대종교 제3세 교주 윤세복·김영숙(金永肅)·안희제·동생 나정문(羅正紋) 등 21명의 대종교 간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수감 중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1943년 9월 17일 액하감옥(掖河監獄)에서 사망하였다. 당시 붙잡힌 대종교 간부 중 10명이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악형으로 사망하였다. 대종교에서는 이때 사망한 10명을 ‘임오십현(壬午十賢)’ 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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