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규천
南奎千1887 ~ 1929. 2. 4
관련 단체
- ·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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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9)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으며 일제에 붙잡혔던 당시 만주(滿洲)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싼다오거우(三道溝)에 거주하였다. 이명은 남호(南虎)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87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건너가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일명 북로군정서) 등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부터 북간도(北間島)의 대한군정서에서 활동하였다. 대한군정서의 모태는 북상한 의병들과 북간도의 한인들이 서일(徐一) 등을 중심으로 왕칭현(汪淸縣)에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인 중광단(重光團)이다. 1919년 만세운동을 계기로 중광단에 많은 대종교(大倧敎) 교인과 공교회(孔敎會) 회원들, 그리고 항일단체가 합류함에 따라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으로 확대·재편이 이루어졌다. 대한정의단은 그 해 8월 김좌진(金佐鎭)·조성환(曺成煥) 등의 군사전략가를 초빙해 군정부의 성격을 지닌 대한군정서로 발전하였다. 대한군정서는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중앙행정 업무를 세분화하고, 중앙본부와 지방행정기관인 경신분국(警信分局)을 구분해 북간도 일대의 한인 자치와 항일운동을 주도하였다. 경신분국의 설치는 1920년 3월 2일 대한군정서의 「경신분국규제(警信分局規制)」의 반포를 통해 명문화되었으며, 북간도의 촌락 100호를 단위로 경신분과(警信分課)가, 20~30호를 단위로 경신분소(警信分所)가 설치되었다. 경신분국의 세부 임무는 지방과 본부간의 원활한 연락, 군자금 징수, 민정 시찰과 같은 제반 행정과 경찰사무, 친일파 처단 등의 지엽적 항일 무장운동 모두를 아울렀다. 북간도 일대에는 제1분국부터 제39분국에 이르는 총 39개의 경신분국이 설치되었다. 이 시기 1920년부터 제18분국 제3지구 경신분과 소속 과원(課員)으로서 연락과 치안유지 업무에 종사하였다. 동년 3월 28일 대한군정서 부총재 현천묵(玄天默)의 지시에 따라 임병극(任秉極)·최수길(崔壽吉)·주기연(朱基淵)·임정삼(任正三)·김현묵(金玄默)·채태묵(蔡泰默)의 6인과 함께 허룽현(和龍縣) 얼다오거우(二道溝) 중앙촌(中央村)에 거주하던 안대화(安大和)(일본명 (江口常作))를 권총으로 처단하였다. 안대화는 단지결사대(斷指決死隊)의 단장(團長) 황룡기(黃龍起)에 대한 정보를 일본 관헌에 밀고한 밀정이었다. 이후 2년 가까이 북간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12월 4일에는 김중건(金重建)·황봉춘(黃逢春)·방주봉(方周鳳) 등의 10명의 동료와 터우다오거우(頭道溝) 근방 김중건의 자택에서 회합해 향후 활동을 기획하던 중 일본영사관에서 파견한 경찰에게 붙잡혔다. 당시 김중건의 방에서 압수된 문서엔 원종교(元宗敎) 계열 재만 항일단체인 대진단(大震團)의 비밀명령서와 국내 지도인 「대동지지(大東地志)」, 혈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서에는 만주 독립운동가들의 대진단 등 재만 항일 단체와의 연계, 국내 침투 등을 기획한 것이 나타난다. 1922년 7월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동년 9월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살인·강도·불법체포·감금 등으로 징역 15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 수감되었다. 7년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2월 4일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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