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문
金應文미상 ~ 1912. 2.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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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9)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하동면(下東面) 외직(外直, 현재의 영월군 김삿갓면 직곡리(直谷里)) 출신이다. 출생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의병장 김상태(金相泰) 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김상태 부대는 경북 북부지역의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경북 봉화(奉化)·풍기(豊基)·순흥(順興)·영주(榮州) 등지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의병부대였다. 김상태는 1896년에 이강년(李康秊) 부대와 유인석(柳麟錫)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중기의병 때는 정운경(鄭雲慶)과 충북 제천(堤川)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1907년 이강년부대에 합세하여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하였다. 그 뒤 1908년 7월 2일 청풍(淸風)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이강년이 일본군에 체포될 때까지 강원도 영월(寧越)·경북 영주(榮州)·충북 영춘(永春) 지역에서 핵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1908년 10월 13일 이강년이 사망하자 김상태는 1909년 3월부터 1911년 6월까지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활동하였다. 이 무렵부터 김상태 부대에 참가하여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1909년 3월 단양군(丹陽郡)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 2명을 처단하였다. 같은 해 (음)4월 20일 의병 60여 명과 함께 순흥군 봉양면(鳳陽面) 남대동(南大洞)[현재의 영주시(榮州市) 부석면(浮石面) 남대리(南大里)]에서 대장의 지시아래 성문조(成文祚)와 함께 충북 영춘군(永春郡) 동면(東面) 의풍리(儀豊里)의 친일인물 조만실(趙萬實)을 잡아와 처단하였다. 1910년 3월 26일 김상태 부대는 예천(醴泉)의 최성천(崔聖天)과 연결하여 예천군(醴泉郡) 위라면(位羅面, 호명면(虎鳴面) 오천(浯川)시장)에서 일본 상인 야마우치(山內銀三郞)를 처단하고, 같은 해 7월 18일 안동군 천전(川前)의 협동학교(協東學校)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1910년 (음)4월 20일 대장의 명을 받고 동료 의병 김동운(金東雲)과 함께 순흥군 단산면(丹山面) 병산리(屛山里,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에 사는 밀정 김해수(金海壽)의 집에 들어가 그를 처단하고, 이어 같은 마을 황진사(黃進士)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으로 엽전 400냥을 징수하였다. 또 같은 달 30일경 다른 의병부대에 속하는 황모(黃某)라는 자가 남의 재물을 빼앗을 뿐 아니라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 악질 소행으로 의병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자이므로 이를 잡아 처단하라는 대장의 명을 받았다. 이때 김동운 등 동료 의병 6명과 함께 순흥군 단산면 옥대리(玉帶里)로 황모를 불러낸 후 처단하였다. 일본군은 1910년 11월 25일부터 같은 해 12월 20일에 걸쳐 군대와 헌병, 경찰을 연합하여 대대적인 탄압작전을 자행하였다. 그 결과 1911년 1월 4일 많은 수의 의병들과 함께 김상태의 참모 문성조(文成助) 등이 붙잡혔다. 김상태는 일본군을 피해 계속 활동을 하였지만, 변절자의 밀고로 1911년 6월 14일 순흥 연화동(蓮花洞)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이 때 함께 붙잡힌 것으로 보인다. 1912년 1월 17일 경성공소원에서 사형을 받고, 같은 해 2월 8일 경성감옥에서 형이 집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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