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삼
金應三1886 ~ 1909. 9.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고광순의진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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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마산면(馬山面) 냉천리(冷泉里)에서 태어났다. 자료에 따르면 188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김원배(金源培)이다. 1907년 고광순(高光洵)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에 나섰다.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고종으로 하여금 순종에게 황위를 선위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7월 24일 일제와 이완용(李完用) 내각 사이에 군대 해산, 사법권 및 경찰권 위임을 골자로 하는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이 체결되었다. 8월 1일부터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지방의 진위대(鎭衛隊)에 대한 해산 조치가 강제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전남 담양의 유생 출신인 고광순(高光洵) 의병장 부대에 합류하였다. 고광순은 1907년 1월 24일 고제량(高濟亮) 등의 지사들과 함께 인근지역 장정들을 모아 담양군 창평면(昌平面) 저산(猪山)의 전주 이씨 제각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고광순이 의병장에 추대되었고, 부장(副將) 고제량, 선봉장 고광수(高光秀), 좌익장 고광훈(高光薰) 등으로 편제를 갖추었다. 1907년 9월 15일 2백여 명의 의병과 함께 동복순사주재소를 공격하여 전과를 거두는 등 활발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해 9월 18일 구례 연곡사(鷰谷寺)에 의병부대 본영(本營)을 설치하였다. 일본에 대한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가던 고광순 의병부대는 1909년 9월 8일 진해만의 중포대대(重砲大隊)에서 파견된 소대 병력, 광주에서 출동한 1개 중대, 그리고 진주경찰서의 순경 등 일본 군경의 공격을 받았다. 이때 의병장 고광순과 부장 고제량 이하 2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연곡사 일대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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