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基
正基1902. 12. 30 ~ 1984. 7.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9)
관련 사건
- · 전주군 전주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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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9) 1902년 12월 30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현 오수면) 오수리(獒樹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18살의 과자상으로, 전주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전주 지역의 만세운동은 기독교와 천도교계 등 종교계 인사들과 학생들이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오전 전주군 천도교 교구실에서 인종익(印宗益)에 의해 독립선언서 1천 수백 여 장과 서울에서의 독립운동 소식이 전해졌고, 천도교 직원을 통해 전북 지방 곳곳에 선언서와 운동 방식이 전파되었다. 천도교 전주교구에서는 기독교측과 연락하여 만세운동의 계획을 준비하였고, 이러한 소식이 신흥학교(新興學校)와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등 기독교계 학교로도 전해지며 만세시위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주지역 천도교계와 기독교계 인사들은 거사일을 전주의 장날인 3월 13일로 정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주 장터에서의 만세 시위는 오전 12시경 강선칠(姜善七)이 공립보통학교에 비밀리에 옮겨 놓은 구한국 국기를 오후 1시경 박태련(朴泰鍊)과 학생들이 군중들에게 배포하면서 시작되었다. 수백 명의 시위대가 전주면 서정에 위치한 공립제2보통학교 부근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전주교를 건너 남문을 지나 대정정(大正町) 우편국 부근까지 행진하는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대에 합류하여 오후 5시 무렵 전주 남문 밖의 전주천 북쪽 기슭 시장에서 구한국 국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펼쳤다.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혀, 1919년 8월 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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