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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金鼎鉉

186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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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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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강동(江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강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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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강동군 삼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정호면(晶湖面) 원효리(源孝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60세로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1860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강동군 삼등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강동군에서 제일 먼저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은 강동면과 접하고 있던 원탄면(元灘面)과 고천면(高泉面)으로 1919년 3월 7일 만세시위가 있었다. 원탄면에서는 기독교인 500여 명 이상이 만세를 부르고 시위행진을 하였다. 같은 날 고천면에서는 50여 인의 기독교인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1919년 3월 11일 삼등면(三登面)에서는 삼등 천도교구가 주도되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삼등 천도교구에서는 3월 3일 교구장 백인덕(白仁德) 등의 천도교인이 모여 만세시위를 논의하고 문선창(文宣彰)을 천도교 평양교구로 보내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였다. 백관범(白琯範)이 만세시위를 총지휘하기로 하였고, 시위 사전 준비는 장관연(張琯淵)이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거사 당일 사용할 태극기 제작과 독립선언서 등사는 한치상(韓致祥)과 장내승(張來昇)이 맡았다. 3월 11일 시위 시작 시간은 오전 10시로 하고 동쪽·서쪽·북쪽 3갈래에 시내로 진입하여 시가 중앙인 홍문(弘門) 앞거리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3월 11일 오전 10시에 장관연의 사회로 열린 독립선언식에서는 백관범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어 시위대는 헌병대를 거쳐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한편 봉래리 주민과 원효리 주민들은 강동면으로 들어오다가 속추리(束芻里)에서 강동헌병분견소에 시위 소식을 전하고자 급히 가던 헌병보조원 2명과 대치하였다. 헌병은 총을 쏘려다가 주민들에게 총을 빼앗기고 붙잡혔다. 이들 주민들은 오후 1시가 넘어서야 강동면에 도착하여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3월 13일에 평양으로부터 파견된 일본군에게 주도자들이 붙잡혔다. 이어 3월 31일 삼등면에서 다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11일 삼등면 만세시위를 총지휘하였던 백관범과 함께 삼등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도모하였다. 이어 같은 날 정호면(晶湖面) 원효리(源孝里)에 있는 천도교구실에서 천도교인 30여 명을 모았다. 이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준 다음 조선독립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강동면으로 향하였다. 가던 길에 속추리에서 백관범이 이끄는 200여 명의 시위대가 합류하여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날 시위의 주도자로 붙잡혀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다시 보안법 적용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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