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원
姜助遠1875. 9. 1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개성군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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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1875년 9월 16일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안협면(安峽面) 읍내리(邑內里) 남동(南洞)에서 태어났다. 감리교 목사였고, 3·1운동 당시에는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송도면(松都面) 고려정(高麗町)에 거주하였다. 상당한 재력을 소유한 지역의 유지로서 1900년대 초 개성 지역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교육 사업에 매진하여 사립 배의학교(培義學校) 부교장과 백천군 사립 창유학교(彰維學校) 교장을 역임하였다. 개성상업학교 설립에 관여하였고, 1906년에는 개성교육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대한매일신보』 지사원으로 활동하면서 미국에서 발행된 『공립신보』 발매를 위탁하는 등 언론의 배포에도 적극적이었다. 1907년에는 개성 남대문 내에 흥학서관(興學書館)을 설치해 서울에서 유통되는 서적을 가져와 소개하였고, 신약(新藥)과 같이 새롭게 소개된 각종 물품도 판매하였다. 1919년에는 경기도 개성군의 독립선언서 배포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개성은 3월 1일 이전 독립선언서가 배포된 지역으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감리교 목사였던 오화영(吳華英)이 전달하였다. 2월 28일 오화영의 동생 오은영(吳殷英)을 통해 직접 독립선언서를 받았다.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인 이만규(李萬珪)에게 연락해 이를 학교 교사 등에게 보여주도록 하는 한편, 밤에는 이만규,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好壽敦女子高等普通學校) 서기인 신공량(申公良) 등과 남부예배당에 모여 선언서 배부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걱정하다가 이튿날 신공량과 다시 상의하였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은 듯하여 우선은 북부예배당 지하실 석탄더미 구석에 감춰두었다. 이 독립선언서는 그날 오후 신공량과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부속유치원 교사 권애라(權愛羅)를 통해 개성군 감리교 북부예배당 전도인 어윤희(魚允姬)에게 전달되었다. 어윤희는 여성 전도인 신관빈(申寬彬)과 함께 그날 오후 2시경 개성 시내로 나가 이를 배포하였다. 만월정(滿月町)과 북본정(北本町), 동본정(東本町) 각 도로에서 지나가는 사람과 부근 주민들에게 배포하면서 독립선언의 취지를 알렸다. 이는 3월 3일 개성군에서의 첫 만세 시위를 촉발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 일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8월 30일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 혐의로 예심을 받은 후 공판에 붙여졌다.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개월, 집행유예 3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3·1운동 이후에도 지역 유지이자 종교인·교육가로서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개성에서 송계학당(松桂學堂)과 정화여학교(貞和女學校) 등을 경영하며 여성 교육에 앞장섰던 김정혜(金貞惠)가 사망하였을 때 장의위원이 되어 의식부(儀式部)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34년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의 법인화를 촉진하려고 기독교 내에서 조직한 협조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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