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金定鎬1884. 9. 1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가평군 읍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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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1884년 9월 16일 경기 가평군(加平郡) 읍내리(邑內里)에서 김재면(金在冕)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본명은 김관호(金寬鎬)이다. 가정이 부유한 편이어서 한문 선생을 초청해 집에서 수학하였는데, 한때 소남(泝南) 이규봉(李圭鳳)의 아래에서 공부하였다. 1898년에 청풍(淸風) 김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1911년 가평에 간이우편소가 설치되고 우편 배달원이 되었다. 1919년 3월 스승 이규봉이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본 뒤, 이규봉의 아들 이윤석(李胤錫)이 주도하는 만세시위 계획에 가담하게 되었다. 1919년 3월 12일부터 우편 배낭 속에 태극기를 넣어 다니며 뜻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만세 거사일을 알려주었다. 이윤석과 정흥교(鄭興敎)는 사전에 모임을 갖고 “이번 만국공회에서 타국(他國)의 영토인 나라는 독립하였다. 경성(京城) 및 각지에서는 독립만세를 부르기 위하여 (음)2월 14일 아침 9시에 집합하라”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해 살포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3월 15일 오전 10시 가평군 북면(北面)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북면 면사무소 앞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가평읍내로 옮겨와 1,000명 가량의 큰 무리를 이루었다. 이때 만세시위 행렬에 합류하여 군청·보통학교·금융조합 등 읍내를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가평군수와 가평헌병분대장의 해산 명령에 시위대가 맞서자 일제 측은 주도자 25명을 검거하는 등 탄압을 시도하였다. 이에 오후 3시에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3월 16일에는 전날 시위에서 붙잡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시위가 이어지기도 하였다. 3월 15일 만세시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뒤 바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19년 4월 26일 이른바 소요와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7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0년 4월 28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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