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柱瀅
柱瀅1889. 12. 3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군비단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함정포주재소 공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1889년 12월 30일 함남 갑산군(甲山郡) 동인면(同仁面) 함정포리(含井浦里)에서 출생하였다. 가족관계와 성장과정은 자료의 한계 상 알기 어렵다. 1922년 6월 남만주(南滿洲) 창바이현(長白縣)에 근거지를 둔 재만(在滿) 독립군단(獨立軍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소속 독립군들인 정갑선(鄭甲善)·김병수(金炳洙)·한성조(韓成祚) 등이 갑산군으로 들어 왔을 때, 이 군단의 단원으로 가입하였다. 6월 14일 이들 3명의 군비단 단원들과 함정포주재소를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 함정포는 고향이었음으로 지리를 잘 알아 단원들을 주재소 앞 하천까지 안내하였다. 밤 11시경 단원들이 주재소로 기습해 들어가고, 주변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주재소로 들어 선 단원들은 숙직을 서고 있던 일본인 순사 1명을 저격해 처달하고, 함께 있던 순사에게에게 중상을 입혔다. 두 일본인 순사를 제거한 단원들은 무기고에서 44식 기총(騎銃) 4정과 탄약 234발, 스미스식 권총 1정과 탄약 6발, 도검 2개를 전리품으로 거뒀다. 파견원들과 전리품을 챙긴 후 군비단 본부가 있는 창바이현으로 향하던 중 추격해 온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함경도경찰부로 끌려오게 되었다. 하지만 일행들과 협력해 압송하는 일본 경찰들을 제압한 후 다시 길을 돌려 창바이현의 본부로 갔다. 파견된 단원들과 함께 창바이현으로 가 이후 군비단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성립된 군비단은 창바이현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독립군단이었다. 그러나 1920년 10월부터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경신참변(庚申慘變)(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으로 소속 독립군 일부가 흩어져 세력이 약화되었다. 이에 군비단은 1922년 2월 주변의 흥업단(興業團)과 통합해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을 만들었다. 이어 두 달 후인 4월에는 다시 창바이현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던 대진단(大震團)·태극단(太極團) 등과 통합해 광정단(光正團)을 성립시켰다. 통합군단인 광정단이 성립되었지만, 이에 참여하지 않고 군비단을 계속 유지하며 활동한 독립군도 있었다. 국내에 파견되었던 정갑선·김병수 등도 통합에 참여하지 않은 단원들이었기에 군비단에 가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군비단 단원으로서의 활동상에 대한 기록은 아직까지 찾아지지 않는다. 이후 1926년 정의부(正義府) 제2중대 2소대원이 되었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비롯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성단(義成團)·광정단(光正團)·고본계(固本稧)·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노동친목회(勞動親睦會)·잡륜자치회(卡倫自治會) 등 8개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해 성립되었다. 따라서 정의부 성립 이전, 군비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이 단체에 통합된 광정단에 중도 가입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정의부는 하얼빈(哈爾濱)에서 어무현(額穆縣)·북간도(北間島)까지 선을 그어 그 이남 만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자치활동을 펼치는 한편, 항일무장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따라서 자치활동을 위한 행정조직과 무장활동을 위한 의용군 조직을 편성하였다. 성립 초기 의용군 사령관은 지청천(池靑天)이었다. 이 같은 정의부 의용군 소속의 독립군이 되어 활동하였다. 1924년 11월에 성립된 정의부에서 1926년 당시 제2중대 2소대원이었음으로 일정한 활동 사항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자료의 한계 상 밝히기 어렵다. 1927년 초 남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단체들은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20년대 후반 남만주에는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과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이, 북만주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과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이 성립되어 이후 만주지역 독립운동을 이끌어 갔다. 이 민족유일당운동이 전개되던 시기 만주에서 독립군 활동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 온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끈질긴 추적을 받아 1934년 7월 고향 함정포리에서 붙잡혔다. 1935년 3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37년 12월 21일 풀려났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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