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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益麗

益麗

1869 ~ 192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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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益麗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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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박천(博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박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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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8) 평안북도 박천군(博川郡) 가산면(加山面) 동문동(東門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6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경 서간도(西間島) 퉁화현(通化縣) 강산(崗山) 2도구(二道溝)에 거주하며 한족회(韓族會) 총관(總管)으로 활동하였다. 한족회는 중앙조직과 한인사회를 구역별로 묶은 지방조직을 설치하였다. 지방조직은 이주한인 1,000호(戶)마다 1명의 총관을 두었고, 그 아래 100호를 담당한 가장(家長), 10호를 담당한 실장(室長)을 임명하였다. 따라서 퉁화현 내 1,000호의 한인 가옥을 담당한 지방조직의 최고 간부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 일제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수립하고 10월 ‘훈춘사건’을 조작하여 약 2만 명에 이르는 대병력을 서·북간도지역으로 침입시켰다. 이후 이듬해 4월까지 독립군기지와 그 바탕이 되는 한인사회를 초토화시키는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자행하였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자신들도 신변의 위험을 느껴 외출을 하지 못하였으며, ‘일본군이 지나가는 곳은 주검과 불바다가 있을 뿐이었다.’고 하였다. 또한 『독립신문』은 이 때 희생된 사람이 3,693명에 이르렀다고 파악하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당시 50세가 넘은 연로한 몸으로 퉁화현 이도구 자택에 숨어 있다가, 1920년 11월 12일 일본군에 발각되어 총살당하였다. 대한민국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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