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壯植
壯植1892. 2. 8 ~ 1937. 12.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2년 2월 8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군) 두산리(杜山里)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부안(扶安), 이명으로 김장식(金長植), 김인식(金仁植)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 천의리(天宜里)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 이두하(李斗夏), 남계창(南啓昌), 남상직(南相直), 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雲), 강태완(姜太玩), 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구장으로부터 도로 보수에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고 4월 4일 아침 농기구를 소지하고 면사무소가 있는 조금리로 갔다. 면사무소에는 600여 명의 주민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이인정으로부터 주민들을 모이라고 한 실제 목적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만세운동을 위한 것이라는 연설을 듣고 이에 호응하여 만세운동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인정의 지휘에 따라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로부터 7km 떨어진 정미면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천의장터로 가는 도중 주민들이 속속 시위에 합류하였고, 천의장터에 도착해서는 정미면 주민들까지 합류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군중과 함께 장터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는 오후 4시 경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 경찰들이 총을 쏘아 4명의 시위 참여자가 부상을 입었다. 이에 격분하여 군중과 함께 천의주재소로 가서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일본 경찰을 구타하는 등 격렬하게 항쟁하고 자진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날의 시위 직후 홍성헌병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운동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서면서 붙잡히게 되었다. 1919년 4월 25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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