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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갑

金在甲

1880. 12. 3 ~ 1926.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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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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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淸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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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상주군 화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0년 12월 3일 충북 청주군(淸州郡, 현 청주시) 강내면(江內面) 태성리(台城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북 상주군(尙州郡, 현 상주시) 화북면(化北面) 장암리(壯岩里)로 옮겨 거주하였다. 1919년 상주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상주군 화북면의 만세시위는 장암리 구장(區長) 이성범(李聖範)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이성범은 자신의 마을에서도 만세시위를 함께 추진할 동지를 구하였다. 이성범으로부터 만세시위에 대한 제의를 받고, 홍종흠(洪鍾欽)·이용회(李容晦) 등과 함께 뜻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이들과 협의하여 만세시위 거사일을 4월 8일로 결정하고, 4월 4일부터 화북면의 각 마을에 독립만세시위에 대한 「권고문(勸告文)」을 보내고,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준비과정에서 이성범 등과 함께 장암리의 마을 청년들을 모아 놓고, “조국을 다시 찾는 일은 우리 청년들이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단결하여 왜놈들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자!”고 외치면서 청년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1919년 4월 8일 오전 동지들과 함께 신일서숙(新日書塾)에 모여 만세시위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오후 2시 주민 100여 명과 속리산(俗離山) 문장대(文藏臺)에 올라 지니고 온 태극기 2기를 높이 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는 화북면에서 일어난 첫 번째 만세운동이었다.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급보를 받은 상주헌병분견소 헌병들이 출동하였다. 이에 마을 주민들을 지휘하여 일제 헌병들과 투석전을 전개하면서 저항하였으나, 헌병들의 무력에 밀려 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 참여자들과 함께 붙잡혀 상주헌병분견소로 끌려갔다. 조사과정에서 만세시위 주도자로 인정되어 별도로 감금되었다가 법원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5월 9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으며 1926년 5월 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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