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金在敦

在敦

1890. 12. 21 ~ 1958. 5. 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在敦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0년 12월 21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가산리(佳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금마면 가산리 연극공연장 만세시위와 4월 2일 홍성시장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이래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만세운동의 정황을 파악한 가산리의 민영갑(閔泳甲)은 이전부터 서울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금마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은밀하게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고, 이에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동조하면서 만세운동 준비가 본격화되었다. 1919년 4월 1일 가산리에서 연극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장소는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이었다. 민영갑 등은 이 연극 공연에 다수의 주민들이 모일 것이기 때문에 이를 기회로 삼아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연극은 예정대로 공연되었다. 연극이 끝날 무렵 민영갑과 이재만 등은 갑자기 ‘조선독립만세’라고 선창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공감하여 수십 명의 주민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한동안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밤의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일본 경찰이 출동하자 주민들과 다음날을 기약하고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다음날인 4월 2일, 전날 만세시위를 전개한 주민들과 다시 모여 민영갑, 이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홍성시장으로 가서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이날은 장날이었기 때문에 전날의 연극 공연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장터에 나와 있었다. 다수의 주민이 만세운동에 호응하여 동참하였고, 이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홍성시장의 곳곳을 행진하였다. 이날 시위 직후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