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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완

金在完

1877. 7. 18 ~ 19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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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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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3.1운동

지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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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서울 삼청동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77년 7월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태식(金泰植)이다. 1919년 서울 삼청동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5일 학생단 시위가 있은 이후 3월 21일까지 서울에서는 시위운동이 두 세 차례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을 뿐 이렇다 할 시위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3월 22일 서울 봉래정(蓬萊町)에서 800명, 훈련원(訓鍊院)에서 500명, 의주통(義州通)에서 800명을 비롯하여 종로와 마포 등지에서 다시 만세시위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위 열기 속에 같은날 밤 삼청동 길 위에서 1919년 3월 26일 오후 8시경 삼청동 시위와 누하동(樓下洞)·가회동(嘉會洞)·옥인동(玉仁洞)과 한양공원(漢陽公園) 등 서울 시내 각지에서 30명 내지 20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쳤고, 오후 10시경에는 와룡동(臥龍洞)과 재동(齋洞)의 헌병경찰소, 종교(宗橋) 경찰파출소에 시위 군중이 몰려가 투석을 하였다. 그리고 종로통과 서대문통에서 밤에 전차를 향해 투석하는 행위가 발생하는 등 3월 26일 밤 내내 격렬한 투쟁이 이루어졌다. 일제 관헌 측 기록에서는 3월 26일에 서울시내 11곳에서 250명이 만세를 외쳤고 15명을 검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으나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그러나 그 해 6월 19일 경성복심법원서 기각 당하고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21일 고등법원에서 다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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