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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金在旭

1887. 9. 10 ~ 1919.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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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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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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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87년 9월 10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가산리(佳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홍성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다 희생되었다. 홍성지역에서는 3월에 몇 차례의 만세운동이 벌어진 데 이어 4월 들어서 군내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금마에서는 4월 1일 민영갑(閔永甲) 등의 주도로 가산리의 가설 연극 공연장에서 공연 도중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민영갑은 송강리 최중삼(崔仲三)의 집에 기거하며 훈장으로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구황리의 이길성(李吉性)과 교류하였고, 약장수로 변장하여 서울을 왕래하던 이재만(李載萬)과 전국적으로 확산된 만세운동에 대해 상의하였다. 이들은 연극 공연장인 이원교(李元交) 집으로 모이는 다수의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합의하였다. 이어 최중삼·김재홍(金在洪)·조재학(趙載鶴)·조한원(趙漢元) 등에게 만세운동 계획을 알려 찬성을 얻었다. 이들은 1919년 4월 1일 저녁 함께 공연장으로 갔다. 오후 8시경 연극이 한창 공연되고 있을 때에 조한원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다수의 관객들과 함께 호응하여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공연장과 인접하였던 경찰주재소에서 일제 경찰이 이 소식을 듣고 출동하여 만세 군중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일부 인사들을 체포하여 주재소로 끌고 갔다. 하지만 주도 인사들은 붙잡히지 않고 공연장을 빠져 나왔다. 다음날 4월 2일 20리 떨어진 홍성 읍내 시장에 나가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 시위로 홍성경찰에 끌려가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는데, 태형의 여독으로 고통을 겪다가 44일 만인 그 해 6월 5일, 3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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