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在俊
在俊1883. 1. 11 ~ 1951. 10.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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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83년 1월 11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가산리(佳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금마면 가산리 연극공연장 만세시위와 4월 2일 홍성시장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가산리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 민영갑은 서울 사정에 밝은 이재만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평소 교류가 있던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뜻을 같이 하여 결합하면서 만세운동 계획이 구체화되었다. 민영갑, 이재만 등은 4월 1일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때 모인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예정대로 4월 1일 연극이 공연되었다.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도 관객으로 참석하여 연극을 관람을 하다가 오후 8시 경부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는 이들의 제안을 받고, 이에 공감하여 다른 주민 수십 명과 함께 만세를 외쳤다. 연극공연장은 곧바로 만세 시위장으로 전환되었으나, 이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어 귀가하였다. 다음날인 2일 전날 만세시위를 전개한 주민들과 모여 민영갑·이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홍성시장으로 가서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의 시위로 인해 홍성경찰서로 붙잡혀 가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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