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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再哲

再哲

1891. 2. 14 ~ 1950.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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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再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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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1년 2월 14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부평리(富平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과 2일 금마면 가산리 연극공연장과 홍성시장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저녁,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농촌에서 흔치 않은 볼거리였기 때문에 관람을 위해 다수의 주민들이 모였다. 이곳에서 금마면의 첫 번째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주도 인물은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이었다.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파악한 민영갑은 서울 사정에 밝은 이재만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고, 평소 뜻이 맞고 활발한 교류가 있었던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4월 1일 연극 관람에 관객으로 가장하여 참석한 민영갑, 이재만 등은 연극이 한참 공연 중인 오후 8시 경 갑자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여 주민들의 이목을 끌고,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때 관람객으로 참가하였다가 이에 호응하여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본 경찰이 진압을 위해 출동했으나, 이날은 별다른 충돌 없이 해산하고 귀가하였다. 다음날 두 번째 만세시위를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일 전날 연극공연장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킨 주민들과 함께 다시 모여 민영갑, 이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홍성시장으로 가서 다시 한번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장날이었던 홍성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속속 시위에 동참해 왔다. 이들과 함께 시장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의 시위로 인해 홍성경찰서로 붙잡혀 가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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