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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在恒

在恒

1874. 3. 17 ~ 191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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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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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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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안성군 이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1874년 3월 17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삼죽면(三竹面) 덕산리(德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안성 지역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이 쏜 총에 맞에 희생되었다. 안성지역은 조선 3대 시장이 개설된 곳으로, 일제 강점 이전부터 일본인의 경제적 진출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부선 철도 개통 이후에는 유기공업의 쇠퇴와 상권 축소 등 어려움이 겹치면서 주민들의 항일의식이 일찍부터 고양되던 곳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19년 당시 안성지역에서는 만세운동이 대규모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안성군 죽산지역에서는 4월 1일 이죽면(二竹面)(현재 죽산면), 4월 2일 일죽면(一竹面)과 이죽면, 3일에는 이죽면과 삼죽면(三竹面)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 1일 이죽면에서는 죽산공립보통학교 학생 50여 명이 교정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또 두현리(斗峴里)의 이기훈(李起薰)·이응식(李應植)·윤상구(尹商求)·장계리(長溪里)의 최창달(崔昌達) 등은 도로 보수작업에 동원된 두현리 주민 등 수백 명을 이끌고 죽산리(竹山里)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가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죽산 장날인 4월 2일에는 오전 10시부터 2,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죽산시장에 모여 경찰관주재소와 우편소,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는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고, 일본 경찰이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자, 새벽 1시 40분 죽산리 입구에서 경찰 트럭을 향해 투석전을 벌이다 경찰의 총에 맞아 3명이 사망하고 7, 8명이 부상당하였다. 또한 3일 오전 5시 경에는 삼죽면 덕산리 방면에서 300여 명의 군민이 이죽면사무소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중 진압하던 일본 경찰의 발포로 2명이 사망하고 4, 5명이 부상당했던 격렬한 만세시위가 안성면 이죽면 시위였다. 4월 2일 삼죽면 덕산리 시위대와 함께 4km 떨어진 이죽면 죽산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던 중, 4월 3일 일제 경찰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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