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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金在洪

1892. 8. 25 ~ 1938.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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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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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靈巖)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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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암군 구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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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2년 8월 25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군서면(郡西面) 해창리(海倉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면서기로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鳩林里) 회사정(會社亭)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영암군에서는 3월 중순 영암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한 바 있는 조극환(曺克煥)에 의해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조극환은 3월 25일 영암보통학교 학생 김민규(金敏奎)에게 동지 규합을 지시하고, 3월 26일 자택에서 태극기 등을 준비하여, 4월 10일 영암읍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영암군 군서면 서기로 재직 중이었는데, 4월 6일 군서면 구림리 박찬성(朴贊成)의 가게 앞에서 박규상(朴奎相)·정학순(鄭鶴順)·조병식(曺秉植)·최기준(崔琪焌)·최민섭(崔旻燮)·최한오(崔漢五) 등과 4월 10일 영암 장날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정학순과 최민섭은 동료 면서기였다. 이들과 4월 7일 밤 군서면사무소에 모여 그 곳에 있던 등사판을 사용하여 조극환이 기초한「독립선언서」 500장, 박규상이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 100장, 태극기 50장을 등사하였다. 4월 9일에는 등사판을 구림리 김월봉(金月奉)의 집으로 옮겨 『독립신문』 500장과 「독립가(獨立歌)」 100장을 등사하였다. 영암 장날인 4월 10일 군서면 구림리 회사정 광장에 많은 시위 군중이 모이자, 준비한 태극기·「독립선언서」·「독립가」·『독립신문』 등을 나누어 주고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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