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在洪
在洪1871. 4. 26 ~ 1932. 3.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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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71년 4월 26일 충남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가산리(佳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한 홍성군 금마면 민영갑(閔泳甲)은 평소 교류하던 같은 지역 이재만(李載萬)과 의기투합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협의하고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다. 이들의 제의에 적극 찬성하여 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함께 동지가 되어 금마면의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1919년 4월 1일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연극 관람을 위해 공연장에 많은 주민들이 모일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기회로 하여 주민들에게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예정대로 4월 1일 이원교의 집에서 연극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이 진행 중이던 오후 8시 경 민영갑과 이재만을 비롯하여 동지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관람객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곧바로 관람객 수십 명이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연극공연 관람은 순식간에 만세시위로 전환되었다. 이 날의 만세시위는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당일 해산되었으나, 시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튿날인 4월 2일, 전날 연극공연장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들과 함께 홍성시장으로 가서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다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은 홍성 장날이었기에 시장에 나온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만세시위는 전날의 시위보다 더욱 큰 규모로 발전하였다. 이 만세시위 직후 붙잡혀 1919년 4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는데 그 해 5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 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변하지 않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삶에서 특별한 활동은 발견되지 않고, 1932년 3월 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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