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金應祚

應祚

1896. 1. 26 ~ 1991. 4. 1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應祚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77)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덕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77) 1896년 1월 26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지창면(知昌面) 낙평리(洛坪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경북 영덕군 만세시위에 학생 대표로 참여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한학을 공부하다가 최봉희가 “기독교 수용이 곧 구국의 길”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세례를 받고 대구의 기독교 학교인 계성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 졸업하였다. 1917년 한국에 성결교회를 세운 선교단체인 동양선교회가 운영하는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하였고, 입학 후 전도 운동에 참여하여 1년 동안 일본에서 활동하였다. 1918년 봄, 일본에서 귀국하여 공부하다가 1919년 3월 1일 당시 탑골공원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경성 성서학원(聖書學院) 학생 대표로 참여하였다. 이 때 영사관 앞 시위 장면 사진을 처음 해외에 보도케 하였고, 그 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영덕으로 귀향하였다. 영덕에 내려온 뒤 영덕군내 기독교 대표와 사회 각층 인사들에게 만세시위를 전개하도록 권유하였다. 1919년 3월 8일 영덕면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수백 명의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관공서와 일본인 가옥을 파괴하는 등 시위를 이끌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 교회활동을 계속하다가 1991년 4월 1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