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칠
金應七1880. 10. 15 ~ 1921. 11.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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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1880년 10월 1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월암리(月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홍성군 금마면 홍성시장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시위는 가산리(佳山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 민영갑은 서울 사정에 밝은 이재만과 협의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평소 교류가 있던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도 뜻을 같이 하며 합류하였다. 이들은 4월 1일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임시 연극공연장을 설치하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을 할 예정이므로 그때 모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4월 1일 열린 연극 공연에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도 관객으로 참석하였다. 오후 8시부터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관객으로 참석한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때 관객 수십 명이 호응하여 동참하였다. 연극공연장은 곧바로 만세시위장으로 전환되었으나 이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이날의 시위는 체포자 없이 해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민영갑, 이재만 등은 다음날인 4월 2일 가산리의 주민들과 함께 홍성시장으로 나가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날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이에 호응하여 함께 만세를 부르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즉결처분에 처해져 태형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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