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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대

金義大

1892. 1. 29 ~ 1925.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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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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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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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괴산군 장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2년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장연면(長延面) 오가리(五佳里)에서 태어났다. 친형 김의현(金義玄)과 함께 오가리에 서당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였다. 1919년 3월 3일, 고종 장례식에 참여할 봉도단(奉悼團)에 김의현과 함께 가입하여 상경한 후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귀향하였다. 이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장연면 만세시위를 위해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준비하고 거사 날짜는 1919년 4월 1일로 결정하였다. 4월 1일 정오가 되자 면사무소 앞에 각 동리에서 온 수백 명이 모였다. 김의현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앞으로 나와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시위대는 면사무소로 돌진하여 건물 일부를 파괴하였다. 그날 밤 김의현 방으로 주민 30여 명을 불러 4월 2일 밤에 다시 면사무소를 습격하기로 계획하였다. 추점리(楸店里)·광진리(廣陳里)·방곡리(方谷里)·조곡리(鳥谷里) 앞으로 된 통문 1통을 작성해 이를 각 마을로 회람시켰다. 통문의 내용은 “4월 2일 밤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만약 이에 응하지 않으면 먼저 거주하는 마을을 파괴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양신집(梁信集)·김일곤(金日坤)·지도원(池道元)·정해문(鄭海文) 등이 찬동하고 가세하였다. 4월 2일 밤, 통문의 취지에 따라 각 마을로부터 장연면사무소 앞에 약 2백 명이 집결하였다.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고 민적부(民籍簿) 9권을 제외한 서류도 파기하였다. 일제 경찰이 붙잡아 신문하자 시위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모든 책임이 우리 형제에게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석방하라”라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붙잡혀 1919년 5월 8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여 그 해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로 감형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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