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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두

金印斗

1897. 11. 25 ~ 1946.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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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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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舒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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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서천군 마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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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11월 25일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마산면(馬山面) 안당리(安堂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서천군 마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천군 마산면에서는 송기면(宋箕勉), 유성렬(劉性烈), 이근호(李根浩), 임학규(林學圭) 등 기독교도(基督敎徒)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송기면은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에 만세시위를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태극기 200장을 만들었다. 이후 송기면은 형 송여직(宋汝直)을 비롯해 유성렬, 이근호, 임학규와 협의하여 신장리(新腸里)의 장날인 3월 29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3월 29일 신장리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태극기를 배포하며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동참하였다.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순사보 이한규(李翰圭) 등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의 해산을 명령하고, 송기면, 유성렬, 송여직 등을 신장리 경찰관출장소로 끌고갔다. 이에 송기면의 뒤를 이어 이근호와 나상준(羅相俊)이 시위대를 지휘하였는데, 경찰은 이들도 끌고갔다. 이때 2,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를 이끌고 경찰에 끌려간 주도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경찰관출장소를 습격하였다. 주도자들을 구출한 후에는 시위대를 이끌고 한산면(韓山面)을 경유해 서천면을 향해 행진하였다. 서천군수 권익채(權益采)의 만류로 시위대가 해산하면서 만세시위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주도자 색출에 나섰고, 곧 붙잡혔다. 1919년 5월 19일 공주지방법원으로부터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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