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金仁洙

仁洙

1899. 11. 28 ~ 1961. 11. 2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仁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01)

관련 사건

  • · 괴산군 괴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1) 1899년 11월 28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칠성면(七星面) 사평리(沙坪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소수면(沼壽面) 면서기로 근무하였고, 괴산군 괴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괴산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3일 고종 장례식이 참석하고자 상경했던 홍명희(洪命熹)가 주도하였다. 홍명희는 귀향과 함께 이재성(李載誠)·홍용식(洪用植)·윤명구(尹命求) 등과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고 괴산 장날인 3월 19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3월 19일 괴산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을 때 시위대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붙잡혔다. 훈방된 후에는 홍명희의 아우 홍성희(洪性熹)·괴산면 서기 구창회(具昌會)와 함께 다음 장날인 24일에 다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밤늦게까지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1919년 4월 17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1927년 6월 신간회 경성지회 설립 당시 서무부 상임간사로 활동하였다. 1929년 1월 개최된 경성지회 임시대회에서 간사와 함께 본부대회 대표회원을 맡고 그 해 7월 경성지회 임시대회에서는 집행위원을 맡는 등 신간회 경성지회에서 꾸준히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선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