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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仁植

仁植

1868. 12. 28 ~ 1945.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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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仁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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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68년 12월 28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군) 장정리(長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산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雲), 강태완(姜太玩), 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 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당시 장정리 구장(區長)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주민들을 방문하여 도로보수 공사에 나갈 것을 적극 권유하였다. 시위 예정일인 1919년 4월 4일 아침 농기구를 지참하고 평상복 차림으로 집결한 다른 주민들과 달리 각오한 바가 있어 의관을 갖춰 입고 대호지면사무소로 갔다. 면장 이인정은 집결한 주민들에게 오늘 모인 것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실제 목적은 만세시위로 천의장터를 향하여 행진할 것이니 동참하라고 연설하였다. 이에 곧바로 만세시위 대열에 참여하였다.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대호지면사무소로부터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천의장터에서 정미면의 주민들과 결합하여 1,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시장 곳곳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4시경 만세시위가 마무리되던 중에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의 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다른 주민들과 천의주재소로 갔다.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하게 시위에 참여하였다.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다음의 제2차 거사를 기약하고 자진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시위 직후 홍성헌병수비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운동 참여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23일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 혐의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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