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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仁浩

仁浩

1900. 2. 26 ~ 198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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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仁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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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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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동래군 동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2월 26일 경남 동래군(東萊郡) 동래면(東萊面) 칠산동(漆山洞, 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동래군 만세시위가 일어나던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 현 동래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19년 3월 7일 서울에서 온 학생대표가 동래고보와 부산상업학교(釜山商業學校, 현 개성고등학교)를 찾아오자 동급생인 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고영건(高永建) 등과 함께 이들을 만나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건을 전달받고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심하였다. 4학년 급장으로서 동급생들을 중심으로 2·3학년 후배들을 결합시켜 본격적으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0일 동래고보 선배이자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여기에 수학교사 이환(李環) 등이 가세하면서 시위 준비가 본격화되었다. 거사일은 동래장날인 3월 13일로 정하였다. 3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 500여 매의 독립선언서와 대형 독립기, 그리고 수백 매의 태극기와 고종 황제 독살설을 담은 「오왕약살(吾王藥殺)」 이라는 격문도 준비하였다. 3월 13일 오후 2시 엄진영이 동래군청 앞 망미루(望美樓)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를 신호로 군청 앞 광장에 모인 시위군중에게 인쇄물을 살포하고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일본 군경과 기마병이 들이닥쳐 발포를 하면서 주동학생들을 끌고 갔고, 이때 다른 학생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1958년 제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의정 활동을 하였으며, 3·1동지회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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