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승
金俊承1904. 4. 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개천무장단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1904년 4월 2일 평안북도 영변군(寧邊郡) 봉산면(鳳山面) 조양리(朝陽里)에서 태어났다. 1925년 대한통의부원으로 독립운동에 나서기까지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1925년 3월 국내로 들어 온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대원 김봉식金鳳植의 권유로 대한통의부 독립결사대獨立決死隊에 가입하였다. 당시 대한통의부는 펑톈성奉天省 싱징현興京縣 왕청원汪淸源에 근거를 두고 군사위원장 오동진吳東振의 통솔 하에 활동하고 있었다. 대한통의부 제6중대(중대장 문학빈文學彬)에 소속되어 영변군 팔원면八院面 용두동龍頭洞의 임인수林仁洙를 비롯하여 4곳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해 4월 김경보(金敬甫)·채무식(蔡武植)·이정운(李貞雲)·김병운(金炳雲)·김봉식 등 6중대원들과 국내로 들어와 평남 안주(安州)·박천(博川)·태천(泰川)·삭주(朔州)·벽동(碧潼)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았다. 김봉식과 함께 고향인 영변과 개천군(价川郡) 방면을 맡았다. 4월 25일 새벽 2시 이들은 중국 민병복 차림에 모젤식 권총으로 무장하고 개천군 한 마을의 구장(區長)을 찾아가 밥을 시켜 먹던 중 그 집에 와 있던 면서기를 순사로 오인하고 처단하려 하다가 빠져나갔다. 구장은 주재소에 밀고했고, 개천경찰서 나카타(長田) 경부보 등 4명과 주재소 순사 3명 등 7명이 마을 일대를 수색했으며, 덕천경찰서에서도 추가 병력이 급파되었다. 이때 김봉식과 마을을 빠져나와 용담리(龍潭里) 건지산(乾支山) 기슭에 있는 김덕린(金德麟)의 집에 은신하고 있었는데, 4월 26일 새벽 일제 경찰 추격대가 집을 포위하였다. 포위망을 뚫고 산중으로 피해 몇 시간 동안 경찰과 격렬하게 교전을 벌이다가 오전 9시경 붙잡히고 말았다. 주거침입, 강도, 공무집행방해,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등으로 1926년 11월 30일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후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7년 11월 14일 출옥하였다. 1965년 2월 27일 62세로 사망하였으며, 2005년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박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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