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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철

姜漢掇

1873. 12. 1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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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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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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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풍산(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풍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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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풍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1873년 12월 10일경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 안산면(安山面) 노은리(老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초, 풍산군의 천도교인 맹시정(孟時楨)은 김병식(金炳軾)의 집에 갔다가 그곳에서 강희준(姜熙俊)에게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들었다. 3월 13일 맹시정은 풍산군 안산면 하지경리(下地境里)의 천도교구실에서 이계술(李啓述)로부터 풍산의 만세 시위에 관한 구체적 계획을 듣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14일 김병식·맹시정 등은 하지경리의 불암(佛岩)에서 시위 군중을 모으기 시작하였고, 노원리(老院里) 방면으로부터 오는 많은 군중을 이끌고 풍산 천도교구당으로 갔다. 그곳에는 풍산 천도교구장 주병남(朱炳南)과 박인진·이학현·장세급(張世芨)·주의락(朱義洛) 등의 천도교 지도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000여 명의 군중은 독립 기원 기도를 올리고 김창선(金昌善)·박인진의 연설을 들은 후 독립 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대가 헌병분견소 앞에 이르렀을 때 헌병들의 총격으로 시위대 2명이 현장에서 절명하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의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7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 형을 받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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