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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경

金白敬

185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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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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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중화(中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중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간동면 장터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57년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간동면(看東面) 광제원리(廣濟院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간동면 간동시장에서 신발장사를 하고 있었다. 평남 남부에 위치한 중화군은 동쪽은 황해도 수안군, 서쪽은 용강군·강서군, 남쪽은 황해도 황주군, 북쪽은 강동군·대동군과 접하고 있다. 서쪽 평야지대에는 기독교인이 많이 살았고 동쪽 지역에는 천도교인이 주로 살았다. 중화군의 독립 만세 시위는 상원면(祥原面) 신읍리(新邑里)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다. 신읍리는 평양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어 3월 1일 평양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있었다는 소식이 곧바로 알려지면서 다음 날인 3월 2일에 200여 명의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3일 오후에도 신읍리에서는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이 각각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3일에는 중화면에서도 장날을 맞아 중화교회와 중화 천도대교구가 연합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6일에 간동면(看東面) 간동장리(看東場里)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장날이라 시장에 갔다가 최상호(崔相鎬)가 ‘한국이 독립된다고 하니 같이 만세를 부르자’라고 권유하여 시위행진에 참여하였다. 이날 천도교인 300여 명과 기독교인 5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이끌며 행진하다가 해산하였다.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기소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다. 1919년 6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항소를 기각하자 상고하였다. 상고하면서 이유서에 세계 상황은 알지 못하야 4천년 조국의 역사를 일어나게 한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동정이 없겠는가, 백성된 도는 충의로써 대(大)가 된다고 말한 것은 뇌리에 새기고 있던 것이고 천리에 순종한 것 뿐이니 이것을 어떻게 위법이라고 하겠는가라고 항변하였다. 1919년 7월 24일 고등법원 형사부가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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