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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金鳳俊

1880. 7. 6 ~ 196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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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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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선천(宣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0년 7월 6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신부면(新府面) 대목동(大睦洞)에서 태어났다. 선천군의 독립 만세 시위는 선천면에 있는 신성학교(信聖學校) 학생들에 의하여 처음 일어났다. 신성학교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에서 설립한 학교였다. 서울과 동시에 평양과 선천에서의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한 이승훈(李昇薰)은 신성학교 성경 교사인 홍성익(洪成益)에게 3월 1일에 신성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만세 시위를 벌일 것을 부탁하였다. 홍성익은 학교 근처에 있던 남교회(南敎會) 목사 김석창(金錫昌)과 신성학교 교원이던 김지웅(金志雄)·양준명(梁濬明) 등과 만세 시위 계획을 추진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신성학교의 종이 울렸다. 150여 명의 신성학교 학생들은 교문 밖으로 나가 행진을 시작하며 주민들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주었다. 이때 미리 연락을 받은 보성여학교(保聖女學校) 학생들 60여 명도 합류하였다. 학생들은 남교회와 북교회를 거쳐 선천면 중심지로 나가는 동안 주민들이 시위대에 가담하였다. 김지웅이 시장 가운데서 전날 밤 서울에서 보내온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선천수비대가 기마경찰대와 함께 출동하면서 학생들과 충돌이 일어났다. 그러자 일본군이 즉시 발포하여 태극기를 들고 앞장서던 기수 강신혁(姜信赫)이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이 날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3일 평양복심법원은 이를 기각하였다. 그러자 ‘독립 만세를 외친 것은 한민족의 당연한 본분으로써 양심의 분발에서 나온 것으로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허락한다면 동양의 평화가 유지되며 일본은 세계적인 명예를 얻게 될 것’이라고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다.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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