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술병
金述秉1878. 7. 27 ~ 197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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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1878년 7월 2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현 안동시) 임하면(臨河面) 오대리(梧垈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안동의 독립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3일 안동면(安東面)에서 일어난 이상동(李相東)의 1인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3월 27일 풍남면(豊南面) 하회동(河回洞)에 이르기까지 안동에서는 독립 만세 시위가 모두 14회에 걸쳐 일어났으며 1만여 명이 참가하였다. 안동군의 독립 만세 시위가 절정기였던 3월 21일에 길안면(吉安面)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임하면 오대리에 사는 김정연(金正演)·김정익(金正翼)·손영학(孫永學)·장두희(張斗凞) 등은 전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에 부응하여 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일은 길안면 천지리(泉旨里)에 있는 천지장터의 장날인 3월 21일로 정하였다. 오대리는 행정구역으로는 임하면에 속하지만, 거리로는 길안면이 더 가까웠다. 그래서 천지장터를 거사 장소를 택한 것이었다. 3월 21일 김정연·김정익·손영학 등의 주동자들이 오후 3시경쯤 천지장터 한가운데서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 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장터를 행진하던 시위대의 일원으로 면사무소로 몰려가자 면장과 면서기에게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주동자들이 면사무소로 들어가려 하자 스기모토(杉本) 순사가 가로막았다. 이에 격분하여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에 돌을 던지고 유리창 2장을 부수는 일에 동참하고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 시위를 계속하였다. 주동자들이 경찰관주재소로 향할 것을 제안하자 다시 시위대와 함께 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만세를 부르고 돌을 던져 유리창 12장 및 가스등을 파괴하는 일에 가담하였다. 이날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에서의 시위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에 벌금 50원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19년 5월 23일 대구복심법원이 항소를 기각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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