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윤
金道允1872. 12. 1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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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3) 1872년 12월 19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동면(東面) 관동리(館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7일경 서울에서 온 기독교인 박용해(朴龍海)로부터 독립선언서 1매를 전달받은 이도재(李道在)는 바로 천도교 이원교구장인 김병준(金秉濬)을 찾아갔다. 당시 이도재는 함흥군(咸興郡) 주북면(州北面)의 천도교인 이기완(李岐完)과 함께 한국인 관리를 포섭하려고 자금 모집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김병준은 이도재와 만세 시위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시우(孔時祐)·박승룡(朴承龍)·장홍규(張弘圭) 등 이원 지역 천도교 중심인물 13인을 이원교구로 모이게 하였고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 이원지단(利原支團)을 결성하였다. 조선독립단 이원지단은 서면(西面)의 장날인 3월 10일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과 이를 위해 인근 지역으로 사람을 파견하여 만세 시위 참여를 독려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우리들 조선민족은 세계의 대세에 따라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2천만 동포에게 이를 알린다’라는 내용의 격문 100여 매와 독립선언서 500여 매를 준비하였다. 3월 10일 서면 남문리(南門里) 장터에서 7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 시위는 조선독립단 이원지단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시위대는 깃발을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날 시위가 이원군의 만세 시위를 촉발하는 역할을 하였다. 동면에서는 3월 11일 군선(群仙)에서 조선독립단 이원지단 장홍규의 주도로 100여 명이 모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6일 용암리에 위치한 있는 용암시장에서 몇 명이 모여 다음 날인 17일 동면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였다. 3월 17일 오후 2시경 김병직(金丙直)·김종익(金鍾翊)·김희순(金希舜)·이경수(李敬洙)·조창서(趙昌瑞) 등과 함께 동면 면사무소 앞에 모인 400여 명의 면민과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독립 만세를 외치던 군중은 세금 반환을 요구하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였다. 이후 만세 시위에 참여한 100여 명은 곡구(谷口)로 이동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지속하였다. 이 일로 일제는 북청에서 일본군 장교 등 16명을 이원과 단천에 파견하고 경계를 강화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하였으나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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