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우
金斗牛1898. 4. 25 ~ 1931. 5.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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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2) 1898년 4월 25일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 태어났고,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거주하였다. 일용노동자(고인(雇人))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평산군의 만세 시위는 서울에서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지시를 받고 3월 2일 평산으로 귀향한 이동락(李東洛)에 의해 준비되었다. 귀향 후 일본 헌병대로부터 감시를 받고 거주제한을 당한 이동락은 강창선(姜昌善)에게 자신이 맡은 임무를 대신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1919년 3월 7일 평산 읍내 장터에서 천도교인이 중심이 되어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8일에도 만세 시위가 재개되었다. 이틀 모두 헌병의 발포가 있었고, 그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만세 시위가 본격화 된 3월 말이었다. 3월 30일 평산 읍내 은담리(隱潭里)와 빙고리(氷庫里)에는 태극기 모형과 독립 만세 전단이 나붙었다. 이어 3월 31일과 4월 1일에는 금암면(金岩面) 한포리(汗浦里)와 인산면 기린리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인산면은 평산군의 서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기린리가 면 소재지였다. 기린리 장날인 3월 31일 오후 1시경 기린시장(麒麟市場)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서홍균(徐洪勻)·엄윤영(嚴允榮)·정학규(鄭學奎) 등 면서기들이 주도하는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가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돌 때, 일제 헌병이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4월 1일에도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김경욱(金京旭)·김인옥(金仁玉)·김익현(金益鉉)·김희삼(金熙三)·노상돈(盧祥頓)·이병권(李炳權)·이춘봉(李春奉)·조상옥(趙相玉)·조중선(趙仲善)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4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시위에서 군중은 독립 만세를 외치며 기린헌병주재소로 향하였다. 하지만 일제 헌병이 시위대에 발포로 대응하여, 3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당하였다. 이 일로 1919년 7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 상해,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상고하였다.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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