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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순

金德順

1877 ~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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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덕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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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강화(江華)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강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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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박정빈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5) 1877년경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부내면(府內面) 동문동(東門洞)에서 태어났다. 1894년 10월 경리청(經理廳) 좌이소대(左二小隊)의 십장(什長)에 동일한 이름이 기재되어 있고, 재판 기록에도 직업이 육군 병정으로 기재되어 있어 동일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경리청이 1891년 서울의 방어에 필수적인 북한산성의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설치되었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기 때문에 당시 그의 나이가 18세이므로 확정할 수는 없다. 1908년 박정빈(朴正斌, 혹은 朴正彬)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 부일배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음)6월 당시 박정빈 의병부대에 들어가서 김용기(金龍基), 지홍일(池洪一), 박계석(朴啓石), 조인선(趙仁善), 고부성(高夫成)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수십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주로 강화도 일대인 교동(喬桐) 송가도(松家島), 강화도 석모도·말도·망도, 산이포(山伊浦), 풍덕군(豊德郡) 영정동(領井洞), 그뿐만 아니라 개성군(開城郡) 금릉포 등 섬과 해안을 배경으로 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군자금 수합 활동을 벌였다. 특히 1908년 7월 24~25일 강화도 말도 해안에 정박한 일본 기선(汽船)을 습격하여 휴대한 총기 등을 보여주며 선원인 야스다 지로安田次郞를 죽인다고 협박하여 현금 200원 가량과 잡다한 물품을 군수품으로 획득하였다. 또 (음)7월경에는 강화도 석포(石浦)에서 자신의 의병 활동을 밀고한 부일배(附日輩) 송대현(宋大鉉)과 양학진(梁學辰)을 처단하였다. 또한 인천 서쪽 해상에서 일본 어선을 공격하여 일본인 선원 1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후 붙잡혀 1909년 3월 23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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