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건
金炳乾1895. 12. 15 ~ 194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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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95년 12월 15일에 평안남도 안주군(安州郡) 안주면(安州面) 남천리(南川里)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시작된 1919년 3월 1일 안주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오후 5시 안주면에서 안주동교회(安州東敎會)의 주도로 독립선포식을 거행하였다. 안주동교회 목사인 김찬성(金燦星)은 3월 1일에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만세 시위를 벌인다는 소식과 함께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김찬성의 아들인 김화식(金化湜)을 비롯한 교회 청년들이 나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고 서울과 같은 날인 3월 1일에 독립 만세 시위를 일으킬 준비를 하였다. 3월 1일 오후 5시 독립선포식이 거행되는 동안 안주면 서문(西門) 밖에서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었다. 독립선언식을 마친 시위대는 시내로 행진하였다. 헌병대는 그날 밤 주동자들을 체포하였다. 김병제(金炳濟)·김영원(金榮元)·김화식·김희주(金禧柱)·박의홍(朴義弘)·이인택(李仁宅)·전성걸(全聖杰)·전예순(全禮淳)·최승준(崔承俊)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다. 1919년 5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항소를 기각하자 상고하였다. 상고 이유서를 통해 ‘파리강회회의에서 파리강화회의에서 영구평화적이고 인도정의에 기반한 민족자결권을 결의함을 알고 있던 중 33인이 발표한 선언서를 보고 정의의 양심이 끓어 만세를 부른 것이다’라며 만세 시위에 가담한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1919년 6월 5일 고등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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