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갑
金炳甲188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유종여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81년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복흥면(福興面) 동접리(東接里)에서 출생하였다. 한자가 다른 김병용(金炳用, 金柄用)이라는 이명이 있다. 농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농민 출신이다.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이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국권 상실이 현실화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음)9월 20일 유종여(柳琮汝)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유종여는 전라남도 장성 출신으로,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척왜창의(斥倭倡義)에 뜻을 함께하여 활동하였다. 동학농민전쟁이 실패로 끝난 이후 국권이 상실되는 위기에 처하자, 1907년 11월경 의병을 일으켜 1909년 5월까지 전북 장성과 순창 등지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다. 그를 비롯한 유종여 의병부대는 1908년 8월 18일에는 장성군(面名, 미상) 용후리(龍後里)에 들어가서 그 마을에 거주하고 있던 김참봉의 집을 습격하였다. 이들은 김창봉이 일본군 수비대에 편의를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그를 잡아 지붕 위에 올려놓은 뒤 집에 불을 질렀다. 의병장 유종여와 함께 1908년 11월까지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펼치는 한편 마을을 돌아다니며 의병 활동에 필요한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이후에도 유종여 부대는 1908년 11월 10일부터 1909년 (음)2월 10일까지 순창·담양·광주 일대에서 장순흥(張順興) 등 30여 명과 함께 총기·식료품·짚신 등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또한 1908년 11월 20일경에는 담양군 용면(龍面) 추월산(秋月山)에서 추격해오던 광주수비대 야마다(山田) 소위가 이끄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11월 말일 경에는 총기 20정을 휴대한 동료 의병 80명을 이끌고 담양군 산면(山面) 월산리(月山里) 이모(李某) 집에 침입하여 “우리는 의병인 바 제복(製服) 및 조발비(調髮費) 300냥을 출급하라”라고 하여 엽전 300냥을 군수금으로 모집하였다. 의병장 유종여와 함께 1908년 11월까지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펼치는 한편 마을을 돌아다니며 의병 활동에 필요한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하지만 일본군의 포위망이 좁혀오면서 1908년 11월 5일경 붙잡혔다. 1909년 12월 17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부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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