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제
金炳濟1894. 3. 27 ~ 1950. 6.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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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4년 3월 27일 평안남도 안주군(安州郡) 안주면(安州面) 건인리(建仁里)에서 태어났다. 평남 서북단에 있는 안주군은 동쪽은 개천군과 순천군, 남쪽은 평원군, 북쪽은 평안북도 박천군과 영변군에 접하고, 서쪽은 서해를 접하고 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난 날에 안주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안주동교회(安州東敎會) 목사인 김찬성(金燦星)은 3월 1일에 독립 만세 시위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서울과 같은 날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김찬성은 아들인 김화식(金化湜)을 비롯한 교회 청년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 3월 1일 오후 5시 안주면에서 안주동교회의 주도로 독립선포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이날 오전에 김화집의 집으로 가서 독립선언서를 받아 읽었다. 독립선포식이 거행되는 동안 안주면 서문(西門) 밖에서 김화식 등 청년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교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독립선언식을 마친 시위대는 시내로 행진하면서 건인리(建仁里)와 청교리(淸橋里) 방면에서 모여든 주민들에게도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었다. 일단 사태를 방관하던 헌병대는 그날 밤 주동자들을 체포하였다. 이때 김병건(金炳乾)·김영원(金榮元)·김화식·김희주(金禧柱)·박의홍(朴義弘)·이인택(李仁宅)·전성걸(全聖杰)·전예순(全禮淳)·최승준(崔承俊)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다. 1919년 5월 10일 평양복심법원이 항소를 기각하자 상고하였다. 상고 이유서를 통해 ‘파리평화회의에서 5대 강국이 민족자결을 원하는 민족에게 기회를 준다는 소식에 이를 호기라 생각하여 한국 독립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번 한국 민족의 독립은 하느님이 허락하고 세계가 부여하고 5대 강국의 일원이 된 일본 역시 허락한 것이라 볼 수 있으니, 폭력도 쓰지 않고 만세를 부른 나는 죄가 없다’라고 항변하였다. 1919년 6월 5일 고등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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