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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하

金炳夏

1859. 2. 2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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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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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구(楊口)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양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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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2)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양구면(楊口面) 함춘리(含春里, 현 양구읍 고대리 함춘마을) 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으로서 1919년 3월 30일 천도교구실에서 양구면 용호리(龍湖里)에 사는 정승원(鄭昇源), 같은 동네에 사는 최우명(崔遇明)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 준비에 나섰다. 대형 태극기와 대한 독립 만세가 쓰인 깃발을 제작하였다. 동면(東面) 팔랑리(八郞里)에 사는 김창헌(金昌憲)에게도 연락하여 동면에 사는 천도교인이 합세토록 하였다. 4월 5일을 거사일로 택하였다. 혹시나 비밀이 새어 나갈까 염려하여 거사 날짜를 4월 2일로 날짜를 당겨 잡았다. 하지만 4월 1일 밤부터 때아닌 눈이 내려 부득이하게 시위 날짜를 하루 늦추어 3일로 결정하였다. 당일인 4월 3일 양구면 죽곡리(竹谷里)에서 수십 명의 천도교인이 독립 만세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양구읍내에 있는 양구군청 앞으로 행진하였다. 만세 시위를 주도한 천도교인 대부분이 이 자리에서 검거되었다. 이때 정승원·최우명·김창헌·최영구(崔榮九)·김명옥(金明玉)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경성복심법원이 6월 27일 항소를 기각하자 ‘만세 시위를 주도한 것은 한국 민족으로서 정의와 인도에 근거한 것’이라며 상고하였다. 고등법원이 8월 14일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면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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