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병헌

金炳憲

미상 ~ 1919. 4. 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헌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벽동(碧潼)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벽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출신이다. 벽동군은 평북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초산군, 남쪽과 서쪽은 창성군과 접하고, 북쪽은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 안둥성(安東省) 콴뎬현(寬甸縣)과 접하고 있다. 만주와 쉽게 오갈 수 있어 1920년대에 무장독립군이 활발히 활동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33인 민족대표의 일원인 이승훈(李昇薰)과 유여대(劉如大)는 독립 만세 운동 계획이 무르익어갈 무렵 의주군(義州郡) 월화면(月華面) 교회 목사 송문정(宋文正)을 벽동교회(碧潼敎會)에 파견하였다. 천도교인들은 천도교 의주대교구장인 최석련(崔碩連)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았다. 천도교인인 양원섭(楊元燮)은 이와 별도로 3월 1일 서울의 만세 시위를 목도하고 돌아온 바 있었다. 이후 천도교인들은 벽동 천도교구의 주도로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제일 먼저 벽동면에서는 천도교인들이 천도교 제1세 교조(敎祖)인 최제우(崔濟愚)의 순도(殉道) 기념일인 3월 10일을 맞아 만세 시위를 벌였다. 수백 명의 천도교인이 순도기념식을 끝낸 후, 길거리로 나아가 독립선언서를 살포하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이날 사전에 벽동교회에 연락해 둔 상태였으므로 기독교인들도 합세하여 시위행진을 벌였다. 20여 일의 시간이 흐른 후인 3월 30일부터 다시 3일 동안 잇달아 천도교인이 주도하는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30일에는 2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만세 시위를 벌였으나, 일본군이 출동하면서 해산하였다. 3월 31일에는 천도교인 100여 명이 벽동공립보통학교(碧潼公立普通學校) 부근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조선독립만세(朝鮮獨立萬歲)’라고 쓴 대형 깃발을 앞세우고 시가지를 돌아 관공서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다음날인 4월 1일 시위에는 군중이 크게 불어나 1,000명이 행진에 나섰다. 한 무리는 동지봉(東芝峯)에 올라 만세를 불렀고, 나머지는 벽동면으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일본군과 경찰이 발포하여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이때 공예수(公禮洙)·김명신(金明信)·박명규(朴明奎)·서윤화(徐允華)·김몽득(金夢得)·김윤찬(金允贊)·최세주(崔世冑)·김승학(金承學)·김인홍(金仁弘) 등 12명이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